쇼미더머니: 실리콘밸리 에디션

올해에도 쇼미더머니가 돌아왔다. 어김없이 쇼미더머니가 불러온 왜곡된 힙합문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면서도 역대 최고급 프로듀서진을 앞세워 또한번 흥행몰이를 예고하고 있다. 돈과 명예를 위해 아티스트들을 경쟁 앞에 줄세우는 가혹한 프로그렘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몰래 출연을 결심한 래퍼들의 사연을 볼 때마다 우리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건 나뿐인가?

게임의 법칙: 돈과 명예

미국 실리콘밸리는 엔지니어들의 쇼미더머니 경연장이다. 엔지니어로 소위 성공을 하고 싶으면 실리콘밸리에 와야한다. 물론 엔지니어링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도 중요하다. 이건 마치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래퍼들이 힙합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것과 다를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 사회를 정의하는 게임의 법칙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누구나 관심있어 하는 돈과 명예가 그것이다.

행복한 엔지니어 vs 불행한 엔지니어

실리콘밸리에 7년간 생활하면서 많은 한인 엔지니어를 만났다. 운좋게 좋은 회사를 여러군데 다니면서 실력있는 형님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이분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일에 대한 열정과 기술의 진보에 대해 논할지 몰라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고상한 얘기는 아무도 안한다. 실리콘밸리 한인 엔지니어들의 공통된 술자리 주제는 언제나 연봉, 승진, 그리고 주식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두가지 부류의 엔지니어가 있다: 행복한 엔지니어와 불행한 엔지니어. 쇼미더머니에 비유하자면 MC한새, 원썬, 디기리 같은 존망 엔지니어가 있는 반면, 도끼, 지코, 박재범 같은 핫한 엔지니어가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기준은 돈과 명예이다. 좋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는 엔지니어와 그렇지 못한 엔지니어.

이런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실리콘밸리는 엔지니어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선명한 곳이다. 예컨대, 주식옵션으로 엔지니어가 단번에 10억 이상 돈을 버는 것도 흔한 일이고, 회사와 타이틀에 따라 연봉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회사가 핫한 트렌드를 타고 대박을 터트리면 직원들도 덩달아 돈방석에 앉는다. 스타트업 신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최근 엔비디아까지 대형 테크회사들의 주식은 몇년새 천정부지로 올랐고 이 회사들에 재직했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적지않은 돈을 벌었다. 주변의 친구들만 봐도 포르쉐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20억 가까이 되는 집을 소유한 “평범한” 엔지니어를 많이 볼수 있다.

불공정한 세상

문제는 이런 부가 실력에 맞게 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빅데이터, 머신러닝 유행에 덕분에 빅데이터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연봉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오른 것인데, 본인도 이 버블의 수혜자이지만 나의 연봉이 왜 올라갔는지 나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2013년 클라우데라에 다니던 시절 운좋게 하둡을 남들보다 빨리 접했다는 사실 때문에 넷플릭스에 270% 연봉인상을 받고 이직했고, 약 3년 동안 3-4억 연봉을 받으면서 다닐 때는 내가 그냥 잘난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도 곧 시련이 닥쳐왔다. 내가 이끌던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존망했고, 회사에서 호기좋게 벌려놓은 목표는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책임을 추궁당했고 구차한 변명을 해야했다. 정말 힘든 시절이었지만 이때 깊게 깨달은 것은 내가 잘나서 성공한게 절대 아니다라는 점이다.

뒤돌아보면 그저 운이 좋았다. 빅데이터가 태동하던 시기에 클라우데라라는 오픈소스 회사에 들어갔고, 내가 일하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넷플릭스라는 회사에서 데이터 플랫폼으로 도입했으며, 넷플릭스는 내가 재직한 3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거쳐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고, 그 주식은 무려 13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꼰대 엔지니어

어디선가 Tiger JK가 쇼미더머니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한적 있다. 힙합을 돈과 명예의 도구로 왜곡해서 이해하는 최근의 풍토가 안타깝지만, 그걸 잘못된 거라고 어린 친구들을 꾸짖는다면 자기는 꼰대가 되는 거라고. 자기도 젊었을 때 기성세대에 맞서 싸우면서 힙합을 했기 때문에 지금 어린 친구들이 하는 것을 틀렸다고 혼낼수 없는 거라고.

가끔 마주치는 젊은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항상 해주는 얘기가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으로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 돈과 명예 같은 세속적인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순수한 젊은 친구들. 나도 예전에는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고 오픈소스에 남보다 빨리 패치를 올려서 그걸 커뮤니티에 과시하는게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 많은 선배 엔지니어들이 일 외에 삶을 가지라고 조언해주면, 난 그런 분들을 꼰대 취급하며 무시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가 마흔을 앞둔 꼰대 엔지니어가 되어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일이 전부가 아니라고 승진에도 신경쓰고 돈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얘기하면 나를 꼰대처럼 처다보는 시선을 느낀다. 그런 친구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켠으로 내가 그때 선배들의 조언을 흘려들은 것에 대한 후회를 저 친구들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Complaining is a zero return investment.

2017년 쇼미더머니에 다시 나온 늙은 래퍼들. 새까만 후배에게 랩 평가를 받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나이를 지긋이 먹은 40대 엔지니어가 어린 후배 엔지니어에게 코딩 인터뷰 당하는 모습이 겹쳐지는 건 나뿐인가? 당신은 40대에 어떤 위치에 있고 싶은가? 돈과 명예를 얻어서 쇼미더머니의 심사위원으로 앉아있고 싶은가 아니면 예선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늙은 래퍼이고 싶은가?

자기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엔지니어들이 많다. 세상이 자기의 노력과 실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게임 자체를 부정할텐가? 쇼미더머니를 욕하면서도 몰래 지원하는 래퍼들처럼 결국은 이 게임으로 다시 돌아올 것 아닌가? 피할수 없다면 이기는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Gary Vaynerchuk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Complaining is a zero return inves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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