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간만에 네트워크 환경이 쾌적한 한국에 들른 김에 쓴 글이다. 흥행을 바라는 마음에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썼다. 요즘 애자일Agile은 한물간 키워드이긴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겪은 바를 토대로 내 이야기를 하면 노력하는 실천가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8년 첫 경험
PM프로젝트 관리자는 2008년 첫 경험을 했다. 그전까지 컨설턴트로 조언을 하거나 감시자 역할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했다. 그러던 차에 2008년 드디어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뚜둥~ 막는 사람이 없으니, 벼르고 벼르던 애자일을 적용하기로 했다. 경험은 없고 책이나 글로 익힌 것이 전부인지라 겉모양만 흉내내지 않기 위해 애자일 선언Agile Manifesto을 수시로 보면서 소위 말하는 삽질을 했다.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하는 삽질. 그 삽질 4개월을 보내면서 실제로 행한 바를 하나의 문구로 요약하면 이렇다.
애자일 선언 흉내
하지만, 실패가 주는 교훈은 확실했다. 그나마 성실하게 삽질을 했기에 몇 가지를 분명히 배웠다.
- One Page Project Management 책의 강렬한 인상과 애자일이 주는 효과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체험
-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일대일 교류만 존재할 뿐 방법론 따위는 없다는 체험
그때 배운 내용을 JCO라는 단체에서 하는 발표에서 공유한 후에는 상세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잊었다. 물론, 체득했으니 부지불식간에 필요한 만큼만 써먹으면서 살았다. 다만 애자일이란 표현 자체에는 점차 무뎌져갔다.
AC2 과정을 한달 듣다
그러던 중에 2012년인가 2011년 말인가 다시 애자일이 내 삶에 가까워졌다. 당시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조직의 변화'라는 커다란 주제를 배경으로 했다. 그래서인지 애자일이란 말이 하루에도 수차례 남발되었다. 하지만, 피로감을 유발할 뿐 그말을 남발하는 사람들은 말만할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내가 애자일에 가까와진 이유는 '조직의 변화'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과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2004년으로 기억하는데 나의 첫번째 멘토께서 업무가 과중할수록 여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셨다. 이를 실천하며 살아왔는데, 2011, 2012년 즈음 스스로 망중한을 만들지 못해 돌파구를 찾다가 평소 페북친구로 지내던 김창준님 글을 보고 우발적으로 신청을 했다. 개인 사정으로 한달밖에 듣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훌륭한 경험을 했다.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창준님 강의도 진화를 했을 터이니 내 글이 객관적인 내용은 아니란 점을 염두하고 읽어주시면 좋겠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내가 배운 바와 그 후로 바뀐 내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당시 배운 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양약고구: 좋은 약은 입에 쓰다
- 자기 철학이나 가치관 (혹은 신앙) 없이 방법만 외쳐봐야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멘토가 될 수 있다
하나씩 부연해보자.
애자일 시작은 '너 자신을 알라'는 쓴소리
소크라테스의 외침과 AC2 첫달 강의는 꽤나 관련성이 높았다. AC2 첫달은 애자일 기법에 대한 소개가 없었다. 이를 기대한 사람들은 계속 과정을 들을지 고민했다. 한 기수 위 선배에게 물으니 전 기수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강의에 대한 선호도에 있어서도 호불호가 갈렸다고 한다. 내 판단에는 창준님이 '수강생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진짜 전달하고 싶은 가치'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보기 좋았지만, 대중적이 되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가치가 높은 과정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왜 배우러 왔는가?
당시 동기들은 꽤 혼란을 겪고 있었다. 자신들이 기대한 바와 주어진 내용에 차이가 많은 듯 보였다. 계속 들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부류도 있었고, 생소한 숙제를 어느 수준까지 실천할지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은 점이다. 나 역시 그랬고, 성격과 인지과정을 다루는 생소한 추천도서들도 나의 내면을 돌아보도록 유도했다. 어쩌면 애자일이니 뭐니 하는 말보다 훨씬 중요한 자기 철학 혹은 가치관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는 과정으로 평할 수도 있겠다.
용기를 가진 실천가
사실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첫날 김창준님이 AC2를 만든 과정을 소개할 때였다. 모든 것을 던지고 소신껏 사는 모습은 목격하는 두 번째 경험이었다. (첫번째는 Spring 프레임워크 개발자인 로드 존슨Rod Johnson) 스스로는 그런 용기가 없던 탓에 부럽고, 또 나에게도 용기가 감염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AC2 과정을 들은 효과가 충분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AC2 이후의 삶
솔직히 다른 AC2 수료자들과 달리 중도하차한 탓에 AC2 훈련을 받았다고 말하긴 부족하다. 그래도 제한적이나마 참여한 과정에서 배운 내용이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 그 중 내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부분은 아래 내용이다.
- XP 책을 다시 읽다
창준님이 실망할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영향을 준 점은 XP 책을 다시 읽고 생긴 변화다. 10년쯤 전인가 XP를 읽었을 때는 사실 거의 이해를 못했던 듯하다. 다시 펼쳐본 XP는 내가 읽었던 그 책이 아닌 것 같다 느낄 정도였으니까. 머릿말부터 전율을 느꼈다. AC2 과정때 읽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2014년에서 2015년으로 이어지는 시점에 XP 책을 다시 펼쳤다. 당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무력감을 겪는 일이 잦았는데, 이를 극복하는데 XP는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다. 꼭 책탓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타이밍 맞게 다시 펼친 XP가 나에게 엄청난 용기와 응원을 해줬다. 더 길게 이야기하면 (이 책이 무슨 마법서인 양) 오해할 우려가 있어 이정도에서 멈춘다. XP 책에서 무엇을 그리 얻었냐고 물을 분들을 위해 그래도 소회를 조금 만기면...
아기 발걸음 원칙
지난 2, 3년간 내가 스스로를 바꿔나가는(혹은 나라는 우물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교훈처럼 선명하게 나를 지탱한 원칙은 XP의 아기 발걸음이다. 우리가 아기때 걸음마로 걷는 법을 배울 때처럼 모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창조주가(혹은 자연이) 우리를 만든 그대로 배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용기를 내서) 한발씩만 더 나아가라는 것이다. 운전하듯 조심스럽게 너무 큰 욕심을 내서 무리하지 말고... 그리하면... (나머지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라.)
당신에게 애자일은 무엇인가?
애자일 자체에 대해서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면,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에게 애자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서 우리팀이나 조직에 애자일은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보라. 그 전에 이것저것 따라하고 PO가 뭐니 스크럼이 뭐니 하는 행위는 어쩌면 소모적인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애자일의 가치가 무엇이든 여러분 자신의 하루하루가 갖는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다. :)
스스로 답을 내지 못한다면
여기까지 관심있게 열심히 읽었는데, 막판에 맥이 빠진다는 분은 아래 메일 주소로 자기 얘기를 담아 주시면 여러분이 시원해질때까지 성심껏 A/S를 해드리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