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프로젝트 딜레마 벗어나기

차세대 프로젝트는 실패한다. 그렇다고 우리 시스템을 그대로 두어선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 상황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2년쯤 전엔 이런 상황을 차세대 프로젝트 딜레마라고 이름 지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말을 쓸 당시 실제로 딜레마로 골치를 앓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2년이나 지난 글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무언가? 당시 그 분들이 얼마 전 연락을 해왔다. 여전히 그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탓인지 방금 느닷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대상이 그 분들일지 아니면 어디선가 또 차세대 프로젝트 딜레마로 고민하는 분일지 모르지만, 내 경험을 살려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하지만, 책을 떠올린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충동이란 사실은 순식간에 깨달았다. 책 쓰는 고통을 내가 감수할 수도 없을 터이고, 무엇보다 일반화 하거나 체계화 하지 않은 경험을 그대로 전한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책을 쓰는 충동을 억누르는 대신 스스로 선언하는 글인 동시에 앞으로 차세대 프로젝트 딜레마를 극복할 용기있는 누군가를 독자로 하는 주제가 둘인 글을 쓴다.

내 안의 거인을 끌어내기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차세대 프로젝트 딜레마에 대한 대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나타나야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아직 주인공도 없는 이야기를 충동에 휩싸여 써대는 이유는 스스로도 불분명하지만, 굳이 수사하듯 찾아내면 올해 연초 한 가지 사건탓이다. 평소 관심이 없던 투자분야에 소양을 갖춰야겠다며 펼친 책의 책머리에서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다소 엉뚱한 말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이를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접하는 우연이라 여길 수더 있었지만, 그 순간은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 후 상당기간 올해 나의 숙제를 '다윗과 골리앗'임을 입에 올리고, 일상에서 잊지 않으려고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우습게도 정작 골리앗이 무언인지를 9월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 책머리를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다.[0]

다윗은 자기 안의 거인을 만나기 위해 골리앗을 만났다. 각각의 우리 안에는 다윗과 골리앗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골리앗을 만날 때 달아나기 때문이다. 골리앗이 없었다면 다윗은 절대로 거인이 될 수 없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15년 넘게 이 바닥[1]에서 커왔기에 그 일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다. 실은 이미 몇 년 전 서울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를 맛보고 피폐한 정신과 육체를 회복하느라 상당한 시간을 보낸 바 있다. 대략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몸과 마음을 추스린 끝에 중국에서 2라운드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작년부터 씨앗으로 삼을 만한 성과를 맛보고 있으며, 1년 반이 넘는 동안 개선행보를 하고 있다. 어쩌면 '차세대 프로젝트 딜레마 탈출'을 돕는 일은 이미 지금의 내 직업이라 할 수도 있고, 내용면에서는 일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시점에 내가 차세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후에 나타날 주인공은 차세대 프로젝트를 그저 발만 담그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던져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사람이다. 어쩌면 받아들이기에 따라 그의 삶은 끔찍한 고통으로 둘러싸인 시간일 수도 있다. 필자가 서울에서 그 일을 시도하던 때에 엄청난 스트레스속에 살기도 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다년간의 실패를 복기하고 다시 도전하는 지금은 주인공에게 대처법 하나는 말해줄 수 있다. 문제의 복잡함 자체에 겁먹지 말고, 거듭 이어지는 용기 있는 행보를 해나가야 문제가 풀린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아기 발걸음 원칙에 맞춰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응하면 그럭저럭 해볼만한 삽질[2]로 바뀐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삶이 괜찮은 삶인지 생각해봐야 하고, 가급적이면 (나처럼) 그렇게 확신하면 좋다.

차세대 프로젝트 안할 수 있게 차세대 프로젝트 하기

대안을 만든다고 했지만 아직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예열 상태다. 중국에서 하는 일도 외주 개발과 운영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긴 하지만 애초에 경영자가 차세대 프로젝트를 하려는 계획따윈 없었다.[3] 주인공이 없는 이 시점에서는 최근 연락을 해온 분을 첫번째 주인공 후보로 이야기를 풀어본다. 에피소드 1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다른 이야기가 계속 되기 바라는 심정으로... :)

에피소드 1의 주인공 K는 관계사 시스템 차세대 프로젝트(전면 개편)를 의도하고 있는 시스템 구축 업체(SI) 소속한 분이다. 그 분이 속한 회사에서도 종전의 차세대 프로젝트 형태는 피해야 한다는 공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스템 구축이 매출의 근간인 회사라는 성격 자체를 당장 바꿀 수는 없다. 당장의 현실[4]만 보면 차세대 프로젝트를 반드시 수주하고 수행해야 한다.

K 입장에서 차세대 프로젝트 수행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기존의 빅뱅방식의 시스템 개발을 하지 말자는 공감대는 갖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 보자. 목표를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앞으로 더이상 (이렇게 고통스러운) 차세대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조직 만들기로 잡아보자.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 무슨 궤변이냐는 반응만으로도 필자의 의도는 그럭저럭 전달된 것이다. 아래 그림은 3, 4년쯤 전에 모 대기업 임원회의에서 필자가 직접 발표한 보고 내용 중에서 그곳 대표이사께서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내용이다.

DevOps를 설명하는 이미지

DevOps를 설명하는 이미지

여러분 경험 내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차차 설명하겠다. 지금 소통하고 싶은 분들은 댓글이나 메일을 주시면 된다. :)

이해관계자 즉, 주인들을 직시하라

K가 위 내용을 소화했다면, 다음으로 이해관계자를 명확하게 하시라고 조언한다.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 달리 이해관계자 식별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5] 왜냐하면 대기업[6]에서는 확고하게 자기 미션을 가진 사람이 극소수이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다. 게다가 그들 절대 다수중에서도 상당수는 윗사람이 경쟁하는 탓에 자기 속내를 명쾌하게 털어놓지도 않거나 못한다. 그래서, 그걸 읽는 법을 가르쳐드릴 수는 없고, 빠르게 이해관계자를 파악하는 힌트를 하나 제시하겠다.

진짜 이해관계자를 찾는 점검표

  • 대표이사나 임원
  • 나와 지향하는 바가 같은 진정한 동료 (내가 진심으로 챙기고 싶은 사람)
  • 어떤 일에 사활을 걸고 일을 하는 사람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흔히 '또라이'정도로 취급되기 쉽다.)
  • 빅마우스라 할만큼 영향력이 큰 사람 (이 사람에게 미움을 사면 피곤해지게 될 것이 뻔한 사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위에 속하지 않는 모두는 일단 이해관계자에서 배제하라는 것이다. [7] 그리고 나서는 이들 이해관계자를 상하관계로 보지 않고 거래 관계로 보라. 대기업에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상하관계가 발생하는데, 그 위계와 문제를 푸는 것은 서로 무관한 일이다. 그런데, 위계에 따르다보면 문제가 불분명해진다. 나는 과거에 압력에 못이겨 힘있는 사람의 요구를 듣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문제를 풀고 있던 실패 경험을 돌아보며 이를 알게 되었다. 거래 관계는 다른 말로 하면 협상을 하라는 말이기도 하고, 그런 활동은 정치와 대단히 닮았다.

프로젝트 관리는 정치다

이 말을 20년쯤 전에 처음 들을 때는 그저 조금 있어 보이는 정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곱씹어보면 너무나도 훌륭한 정의다.

이해관계자의 중심은 나

그리고 이건 정치에 대한 또 다른 훌륭한 정의[8]다.

정치에서 현실만 강조하는 것처럼 아둔한 인식도 없소. 정치는 현실과의 씨름이면서 역사와의 대결이요.

멋진 정의이지만, 현실도 녹록치 않은데 역사까지 끼워서 일을 어렵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일단 내 삶에서 풀어내야 한다. 왜냐면 내 일상은(K의 일상 역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 투성이다. 그래서, 빠르게 실천하고 몰입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내가 딜레마를 극복하고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혹은 내가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차세대 프로젝트에서 책임져야 하는 몫에 대한 대가로 기대하는 것은 무언가? 우선 이를 최대한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에피소드 1의 시작은 여기까지다. 다음 이야기는 아직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주석

[0] 부자 아빠의 미래 설계, 책머리에서 인용

[1] 필자는 프로그래밍을 익힌 후 지금까지 개발자와 컨설턴트로 외주  개발 사업(소위 말하는 SI 형태) 시장에서 줄곧 일해왔으며, 특히 2010년 이후에는 '이 바닥' 개선을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 개발자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삽질'을 뜻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생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그보다 강조하고 싶은 의미는 '그 짧은 고생'을 통해서 '빠른 학습을 하는 피드백'이다. 삽질을 조금 더 큰 일에 응용하면 아기 발걸음 원칙에 부합하는 행동 패턴을 만들 수 있다.

[3] 중국에서도 SaaS를 만들고는 있지만 과거부터 프로젝트 성격으로 시스템 개발을 요구했던 고객들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고수하고 있어, 이 글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4] 뒤에 인용할 정치의 정의[7]를 활용한 글귀다. 현실과 싸우기 위해 차세대 프로젝트를 해야 하며, 동시에 역사 혹은 미래를 위해 결과적으로는 회사의 성격도 바꿔야 한다.

[5] 필자의 주장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하신 분은 거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면 Gerald Weinberg의 Are You Rights On?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우리말 번역서가 '대체 뭐가 문제야'로 존재하며, 필자도 갖고 있으니 필자 소재지로 찾아 올 수 있는 분에게는 빌려드릴 수도 있다.

[6] 지인은 대기업소속이고, 필자의 경력 대부분은 대기업이나 그에 준하는 기업 대상으로 시스템 구축이나 컨설팅을 해왔다.

[7] 그렇다고 그들을 소외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일을 시작할 때는 선택과 집중을 위해 분명하게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 혹은 일의 주인들을 찾아야 한다.

[8] 태백산맥 5권, 141~142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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