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간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럴 만한 동기가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던 차에 우리 회사의 서비스의 가격을 책정해야 하는 난감한 문제를 만났다. 하지만, 아는 것이 너무 없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차에

마침 열정적인 지인의 권유로 <프라이싱>이란 책을 읽은 것이 아마도 긴 여정의 첫 시작이 될 듯하다.

가격의 다양한 차원들

프라이싱 40쪽 표는 두고두고 참고할만 지침을 제시한다. 가격의 다양한 차원들. 평소 무심결에 지나쳤던 가격의 다양한 양상이 가격 책정을 할 때는 시간을 두고 하나씩 풀어봐야 할 문제의 차원일 수 있다1).

  • 기준 가격
  • 할인, 보너스, 리베이트, 조건부 가격, 특가
  • 포장 크기나 상품의 특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가격들
  • 고객군(어린아이, 노년층), 하루 중의 시간대, 위치, 제품주기의 속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가격들
  • 보완재의 가격들(면도기와 면도날, 스마트폰과 데이터요금제)
  • 특별서비스 및 부가서비스의 가격들
  • 2개 차원 이상의 가격들(선불 요금과 사용 요금)
  • 묶음 가격
  • 개인적인 협상에 의거한 가격들
  • 도매가, 소매가, 생산자권장가격(MSRP)

이들의 나열만으로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분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 영역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낯선 곳에 갔을 때 여행지 가이드에서 나눠주는 지도와 같은 것이다.

이익을 내는 가격

프라이싱의 저자는 시장 점유율만 쫓는 기업에 지속적으로 경고한다. 가격은 매출(혹은 수익)이 아닌 이익에 기준을 두고 책정하라고 여러 차례 조언한다. 하지만, 단기 성과를 책임지는 고액 계약직인 전문 경영인에게는 실천할 수 없는 지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독자의 경험이 어떠하든 아래 인용한 문단의 내용은 새겨둘 만한 글이다.

가격설정은 2가지 개념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 번째로 당신의 고객들이 당신의 가치를 어떻게 자각하는지 알아야 하며, 두 번째로 그 가치를 유지하거나 개선하는 데 필요한 이익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출처: <프라이싱> 183쪽

가격결정의 정수는 가격차별

가격결정이란 난제를 실질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쉽지 않는 도전이 필요하다. <프라이싱>은 이를 이익사각형을 이익삼각형으로 변경하는 일로 설명한다. 책 253쪽의 그림과 유사한 그림이 인터넷 상에 있어 이를 첨부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yanplee&logNo=140101482609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yanplee&logNo=140101482609

필자가 이를 설명할 재주나 경험은 없다. 다만, 책을 통해 대강의 원칙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실제 수행을 위해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끈질긴 실험이 필요함을 공감할 뿐이다. 앞선 가격의 다양한 차원을 보여주는 체크리스트는 조만간 써먹을 수 있겠다 각오를 하지만, 이익삼각형을 실제로 적용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혁신적인 가격 결정 방식

<프라이싱>은 가격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책이다. 혁신적 가격 결정에 대한 것은 아직 소화하기 무리지만,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었다.

미래의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많은 돈을 벌 기회를 가진다.

혁신적 가격 결정은 결국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난한 시장 이해와 실험 과정에서 운 좋게(?) 발견하는 그런 것에 가까운 듯하다. 이쯤에서 인생을 오직 가격 책정에 대한 문제에 바친 듯한 프라이싱의 저자 헤르만 지몬에게 경의를 표한다.

프라이싱 책 표지

프라이싱 책 표지

가격인하 대신 현금이나 상품을 제공하라!

책에 소개된 내용 중에서 흔치 않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다. 특히 불황기에 효과가 빛이 난다. 가격을 낮추는 대신 상품을 더 제공하면, 결국 판매 수량이 늘어난다. 불황에 직원을 감원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인데, 가격인하 대신 현금이나 상품을 제공하면 고용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아름다운(?) 조언이다!

설비과잉은 최대의 적

저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잉설비를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호~ 그렇다. 저자가 언급한 업종이 아니라 필자의 주변에서도 설비 과잉은 매일 발견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클라우드 도입을 외치는 기업들에게서도 설비 과잉을 쉽게 발견한다. 그리고, 차세대 프로젝트는 그야 말로 설비 과잉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심지어 우리는 사소한 도구 하나를 도입할 때에도 설비 과잉을 범하고는 한다. 자동차 산업의 경고를 자기 분야에 응용하여 적용할 수만 있어도 우리는 상당한 위험 한 두개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신흥시장에서도 언젠가는 생산 능력을 과도하게 늘린 자동차 업체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심각한 가격 결정 실수 피하기

<프라이싱> 후반부 401쪽에서 가장 유용한 지침 하나를 또 제시한다.

적절한 가격전략을 찾기보다 오히려 심각한 가격 결정 실수를 피하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일 수도 있겠다.

2, 3 가지 정도 실천 방안을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 잘 모르면서 무리수를 두지 않기
  • 과도한 시장 점유율에 대한 욕심으로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 고객 지불 용의에 대한 실험을 하면서 신중하게 시장 가격을 찾기

맺음말

필자 회사의 제품은 SaaS 서비스이다. 공산품처럼 원가 산정을 통해 가격을 책정할 수 없다. 유사 제품의 가격표를 보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지 몇 달간 유사 제품의 가격표를 벽에 붙여두고 쳐다보기도 했다. 아무 영감도 받지 못했다. 프라이싱이 쓰여진 배경에 SaaS 따위가 있지는 않다. 대체로 전통적인 가격 책정에 대한 이론과 경험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가격 책정에 대해 처음 감을 잡는 시점에 프라이싱이란 논문집 같은 책을 무리하게 다 읽어보는 식도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 저자의 글에는 그의 일생에 걸친 집념이 담겨져 있다. 독자 입장에서 볼 때는 가격에 대해 모든 것이 과하게 담겨져 있다. 평생을 담아 쓴 글을 단 시간에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다만, 가격 책정에 대해 묘수나 환상을 기대하기 보다는 찬찬히 다양한 관점을 살피고 무리수를 피할 수는 있을 듯 하다. 그리고, 내년 혹은 내후년에 다시 이 글을 읽으며 내 생각이 자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 혹은 우리의 제품에 그가 간절히 다루던 문제의 일부를 담아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테고...

주석

[1] 올해 말 즈음에 나는 다시 한번 여기 나열한 가격의 다양한 차원들에 대입하여 당시 내가 고민할 제품의 가격에 대해 검토해보겠다는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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