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를 읽고

페이스북에 간단한 독후감을 쓰고도 아쉬워서 블로그 글로 남긴다. 먼저 이 책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 라고 답할 것이다. 묻는 대상이 주로 역사학자나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표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표지

한국판 역사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한 줄로 소개하라면, 이책은 한국판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소개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설명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는 말이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역사'하면 단 한권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필자가 역사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1]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가 E.H.카[2]가 설명하는 그런 유용한 것인지 몰라서 읽지 않았다. 학교에서 잘못 배운 탓에 연대기나 읊는 것을 국사나 세계사로 알았고, 교과서만 보면 당시 지배계급과 그 주변에 대한 편협한 이야기의 간략본으로 보여 흥미를 유지할 수 없었다. 역사가 현재의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며 따라서 유용한 지식임을 알았더라도 더 빨리 역사책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유용한 역사책으로 조정래 소설 <한강>을 꼽을 수 있겠다. 소설이 무슨 역사 책이냐 할지 모르지만, 실용성 측면에서 이보다 더 훌륭하게 우리사회의 기저를 이해하게 하는 역사책은 없다. 그러니 소설로라도 역사책을 대신해야지. 잠시 딴 얘기로 흘렀는데, <역사란 무엇인가> 만큼 역사에 대한 기본 이해를 돕는 책이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니 만큼 한국판 역사란 무엇인가 라고 칭해보았다. 고로 아직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은 분이라면, 그 책보다는 이 책으로 보시라고 권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지에 대한 설명은 에피소드에 나오는 저자의 말로 대신한다.

역사는 내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를 알면, 시간이 지배하는 망각의 왕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질 온갖 덧없는 것들에 예전보다 덜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했다.

다수의 장으로 이뤄진 내용 중에서 필자가 다 읽고 기억에 남는 꼭지는 대략 세 가지다.

과학적으로 인류 역사를 쓰다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소개하는 내용이 최근 내용이라 현재 삶에 투영하기에 가장 용이할 법하다. 필자는 과거 직업 경험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는데, 데이터 분석을 통한 진정한 숫자[3]를 이용한 경영 혹은 운영을 과거에 한 멘토가 '과학적 운영'이라 칭한 일이다. 유발 하라리가 '과학혁명'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혁명중 하나로 언급한 부분은 읽을 때는 '과학적 운영'이란 말을 들었을 때와 유사한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애자일과 함수형 혹은 람다 프로그래밍 등의 서로 다른 개념들에 왜 내가 관심을 두고 살아왔는지 단번에 이해[4]하게 된다. 그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지금 과학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초안 수준이지만 번쩍 찾아온 인사이트를 생활지[5]로 활용하면 필자가 과거에 해오던 일이 바뀌는 앞으로의 업무 정의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한 두가지 변수문제를 정의하여 실험하고, 데이터골격으로 사업을 바라보고 변화와 불확실성을 푸는 실험 결과를 재사용 하는 일에 컴퓨팅 자원경제적으로 활용하는 일

이 부분은 필자의 고유 경험이고, 일반론으로 마지막 장을 읽은 소감을 다시 써보면...

다이아몬드와 사피엔스의 글을 소개하는 '박식한' 역사 가이드 유시민은 전통적인 역사가들의 역사 연구나 서술방식이 아닌 과학에 입각한 역사서술의 등장을 알려 준다. 그러면서, 인문사회학이 갖는 피할수 없는 편견을 벗어난 생물학 산물인 종에 대한 연구 결과나 지리와 지질에 대한 연구에 기초한 역사를 말한다. 그리하면 서구 중심의 사고나 종교, 인종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인류(사피엔스)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관의 지동설 등장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천동설에 비유하며 '문명' 단위로 상대적 관점의 역사관을 내놓았다고 한다. 과거 고미숙 선생님께 들었던 '문화 상대주의'란 관점이 떠오른다.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천동설에 빗대어 꼬집었던 선구자와 그 계승자 토인비를 다루는 내용을 볼 때는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된다.

한편, 조선, 대한제국 등 우리 민족의 역사가를 다룬 부분에서는 확실히 '사대주의'를 꼬집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사대주의'는 아직도 대한민국 주류사회의 인식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필자의 인식 때문인 듯하다.

다음은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이야기다.
“신라가 고구려·백제 두 나라 사이에 고립된 한낱 약소국이 되자, 김춘추는 당에 들어가 당태종을 보고 힘닿는 데까지 자기를 낮추고 많은 예물로 구원병을 청했다. 아들을 당에 볼모로 두었고, 신라의 의복을 버리고 당의 의복을 입었으며, 신라의 연호를 버리고 당의 연호를 쓰기로 했다. 당태종이 편찬한 역사서와 『사기』, 『한서』, 『삼국지』 등에 있는 조선을 업신여기고 모욕하는 말들을 그대로 가져다 본국에 유포해 사대주의 병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공교롭게 신라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 자한당의 모습을 보면 위에 인용한 역사가 고스란히 시대를 초월해 유지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역사를 보는 이분법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점은 첫 장에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비교하며 이분법을 사용한 부분이다. 이분법 활용으로 역사 서술의 쟁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냐 아니면 사실 기록이냐. 에필로그에서 유시민의 견해가 분명히 드러난다. 역사는 결국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역사가와 독자의 이야기 즉 그들의 삶안에서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과거에 썼던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를 강조한 글이 떠오른다. MSA 따위도 그러하지만 역사 역시 우리의 삶에서 활용할 수 있을 때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주석

[1]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즈음에는 정말 역사책을 하나도 읽지 않았나 했는데, 글 쓰면서 생각해보니 <로마인이야기>나 <그리스로마 신화> 정도는 학창시절에 읽었던 듯 하다.

[2] <역사란 무엇인가> 책의 저자

[3] 진정한 이란 말이 의미가 있으려면 진정하지 않은 숫자도 있어야 한다. 보통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율 등에 집착하는 모습 혹은 대기업의 상사에 의한 직원 평가 등이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하지 않은 숫자를 통한 경영의 사례다.

[4] 혹은 오해나 지나친 비약일 수도... ^^

[5] 고미숙 선생님 명리학 강의에서 처음 들은 말로 생활과 유리된 현대의 서양식 공교육에 대비하여 생활과 밀착한 지식과 배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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